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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마라톤의 역사
이병호 2009-09-27 14:36:29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약 72년이다.
마라톤 첫 공식 기록이었던 3시간 29분 37초(마봉옥)가 현재는 2시간 07분 44초(이봉주)로 단축이 되었다.
한국 마라톤 역사의 시간은 자꾸 길어지고 있지만 기록은 단축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마라톤 공식기록은 마봉옥씨에 의해 작성이 되었다.
1927년 조선신궁 체육대회에서 3시간 29분 37초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1930년에는 인력거를 끄는 이성근이 2시간 36분 30초의 기록을 세웠고,1931년엔 김은배가 2시간 26분 12초로 그 당시 비공인 세계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했다.
한국인으로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1932년 LA올림픽이다. 그것도 한명이 아닌 두 명이나,,,
권태하라는 청년과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은배가 그 주인공이다. 권태하는 9위에 김은배는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누굴까?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다 아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손기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35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5분 19초 라는 한국 최고 기록 및 대회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월계관을 쓰게 된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 그 한을 가슴에 안고 달려, 만천하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면서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도 유명한 일화로 내려오고 있다.)  

해방 이후엔 당당히 태극기를 앞가슴에 달고서 서윤복이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처음 태극기를 달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탓인지 서윤복도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1950년 같은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마라톤이 기록 경신의 맥을 다시 이은 것은 1957년에 열린 보스턴 대회에서다.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임종우가 2시간 24분 55초라는 기록을 작성했던 것. 손기정이 세운 기록을 35년만에 깬 것이다. 그 뒤 이창훈이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48초 앞당기면서 우승을 했다. 아울러 그는 1959년 9.28 수복을 기념해 열렸던 인천~서울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4분 07초를 기록했다. 1962년에는 김연범이 43회 전국체전에서 2시간 23분 5초를 새 기록을 세웠고, 이상훈은 1963년 도쿄 올림픽 예선과 64년 18회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2시간 21분 54초와 2시간 21분 25초로 2년 연속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김복래는 1965년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2시간 20분 19초로, 1966년엔 37회 동아 대회에서 2시간 19분 07초로 연거푸 신기록을 작성했따. 김복래 20분 벽을 깬 주인공이기도 하다. 62년부터 66년까지 5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한국 마라톤은 이후 3년간 기록 행진이 주춤 했으나 1969년 제 50회 전국체전에서 박봉근이 2시간 18분 18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기록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 기록은 다음해 열린 제 41회 동아대회에 출전한 김차환에 의해 깨졌다. 김차환은 이 대회에서 2시간 17분 34초를 기록했고, 3년 뒤인 1973년 제 44회 대회에서도 자신의 한국 최고 기록을 33초 앞당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에는 한국 기록이 두 번이나 경신이 되었다. 조재형이 일본 교토 마라톤 대회에서2시간 16분 26초에, 제45회 동아 대회에서는 문흥주가 2시간 16분 15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10년간 한국 마라톤은 침묵을 지켰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에서 김양곤이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는 기록 경신도 없었고,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했다.  

한국 마라톤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84년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그 해 3월에 열린 동아 대회에서 이홍렬이 2시간 14분 59초를 기록하면서 아슬아슬하게 15분 벽을 허물었다. 이 벽을 허문 덕에 그는 5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상금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깨기 힘든 기록이었으리라. 15분의 벽이 허물어지자 뒤를 이어 1986년 유재성이 2시간 14분 06초, 1987년 이종희가 2시간 12분 21초로 12분 대에 진입한 국내 최초의 마라토너가 되었다.  

1990년대는 한국 마라톤이 아시아와 세계 무대를 석권한 황금기다. 90년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김원탁이 우승을 차지했고, 90년 동아 대회와 91년 춘천 대회에서 김완기는 2시간 11분 34초와 2시간 11분 02초라는 신기록을 만들어 낸다. 같은 해 황영조는 91년 제41회 뱃부~오이타간 국제대회에서 '숙원의 10분 벽'을 깨고 당당히 2시간 08분 47초라는 기록을 세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을 기해 열린 동아대회에서 김재룡과 김완기는 나란히 2시간 09분 30초와 31초를 마크. 국내코스에서 처음으로 9분대 진입에 성공을 했고,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황영조는 57년만에 손기정옹의 한을 풀어주면서 민족의 영웅으로 등극을 한다. 1994년에 두 차례에 한국 기록이 경신되었다. 김완기가 동아 대회에서 2시간 08분 34초를 세우자, 한달 뒤 황영조가 보스턴 대회에서 2시간 08분 09초를 수립하고,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96년 황영조가 은퇴한 뒤, 그 공백을 메울 스타가 태어났다.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한 이봉주가 98년 로테르담 대회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2시간 07분 44초라는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 마라톤의 스타로 자리매김을 한다.한국 마라톤의 7분대 시대를 열면서. 새천년이 열리면서 처음으로 열린 200년 시드니 올림픽. 국민들이 이봉주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이봉주는 레이스 중 넘어져 24위에 그쳤다.하지만 보란 듯이 후쿠오카 국제 대회에 참가해 2시간 09분 4초의 기록으로 준 우승을 차지한다. 2003년 현재 이봉주와 함께 지영준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이어갈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마라톤의 역사는 시간의 벽을 허무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 길면 길수록 완주 시간은 짧아질 것이다.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기록도 단축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라톤 강국이 아닌 마라톤을 사랑하는 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마라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마라톤 역사는 빛이 바랠 것이므로, 이 다음 페이지를 장식할 영웅이 탄생되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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